“지금 자기가 사는 동네를 여행 해보는 거야.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 골목들, 길들 이런 거 한 번 자세히 관찰을 하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보세요.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 개론의 시작입니다.”

지난해 이맘때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를 본 뒤 떠오르는 첫 소감은 뜬금없게도 ‘내가 왜 건축학개론 수업을 놓쳤지’라는 후회였다. 별별 개론수업을 찾아 들었지만, 남는 것 별로 없던 ‘개론’ 시리즈에서 ‘건축학개론’만은 지금이라도 쓸모가 있지 않았을까.

땅값과 프리미엄이 건축의 뼈대가 돼버린 세상에서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태평동에서 즐겁게 같이 사는 이웃’이란 뜻을 가진 공동체주택이 지어졌다. 오랫동안 살던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집짓기의 시작이었다.

소행주 – 전용면적과 공유면적, 살갑게 만나다

소행주 1호 벽화엔 노란 은행잎이, 성미산 기슭엔 노란 개나리꽃이 피어 있다. 성미산마을 남자들끼리 2박3일 통영여행을 떠나기 한 시간 전. “지난번에 엄마들끼리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심야영화 보고 자정 넘어서 들어왔거든요.” 1호 입주자인 박흥섭 님을 따라 소행주 집 구경에 나섰다. 그는 코하우징주택 코디네이터 마을기업 ‘소행주’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골목에서 올려다 본 소행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했다. 딱 봐도 아홉 세대 아홉 가지 집을 짐작할 만큼 입체감과 다채로움에 정겨움까지 묻어나는 공동주택이라니, 흠~. 어서 집안 구석구석을 들락날락거리고 싶어진다. 먼저 옛 터의 기억을 그린 벽화와 평상과 마주쳤다. 뒤 켠 자전거주차장엔 아홉 집의 어른, 아이들이 쓰는 자전거들로 ‘만차’. 2층은 마을기업들과 방과후교실, 공용공간 ‘씨실’, 3층부터 5층까지 입주자 맘대로 지은 다양한 평수의 9세대 집들. 엘리베이터로 이어진 옥상출입문 앞 공간은 공동물건 보관소로, 선풍기나 두툼한 겨울이불처럼 계절물건, 어쩌다 한두 번 쓰는 여행용 가방과 운동기구, 함께 쓰면 좋을 공구들을 두었다. 아담한 옥상정원 ‘날실’엔 나무 데크와 작은 텃밭을 꾸몄다. “여름엔 여기에서 맥주도 마시고 누워 있기도 해요. 튜브를 놓고 아이들이 물놀이도 하구요.”

옥상에서 둘러보다 비슷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소행주 2호와 짓고 있는 3호도 한 동네였구나! 코하우징주택 소행주는 세대가 1평씩 마련한 커뮤니티실과 함께 쓰는 공간들이 조금씩 다르다. 1호 커뮤니티실 ‘씨실’은 2층에 입주한 도토리 방과후 학교와 함께 쓰기로 하면서 더 넓어졌다. 2호 커뮤니티실 ‘느티재’는 1층 데크와 모래 놀이터와 이어지는데 그 사이에 화장실을 배치해, 아이들이 놀다 바로 씻고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엄마들이 앉아서도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창을 낮게 달았다. 커뮤니티 공간에는 음식을 같이 해 먹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장치도 갖췄다. 3호 입주자들은 1, 2호를 거울삼아 공용공간에 대한 ‘열띤 토론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우선 옛 집 마당에 있던 단풍나무를 1층 공용공간과 데크로 이어진 앞마당에 다시 옮겨 심기로 했다.

아홉 채를 품고 있는 소행주 전체 평수는 80‧90평 정도. 전용면적 9평부터 31평형까지 세대마다 생활에 맞는 규모와 구조를 선택했다. 다들 이전 집보다 작아진 새 집에 맞추기 위해 살림살이를 줄이고 줄였다. 아이들에게 ‘감기’가 돌면서 한동안 뜸했던 소행주 2호 식구들이 오랜만에 느티재에 모였다. “계산을 다 하고 온 집이래도 실제 집을 보면 정말 작아요. 그래서 부지런히 버려야 해요.” 라고 ‘작아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들어있는 집’이라며 101호 소리짱이 말을 꺼내자 이집 저집 작은 집에서 사는 애환이 쏟아진다. “커뮤니티실이 있는 소행주가 아니었으면 못 살았을 거예요. 집안 물건들을 자꾸 공용창고에 갖다놓아야 해요.” “이사 올 때 정말 많이 버리고 왔는데 버려도 끝이 없어요.” “작은 집에 오니까 알뜰 소비하자며 많이 버렸는데도 소비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웃음소리와 함께 공감의 파장이 퍼진다.

* 이 기사는 2013년 4월호 특집 기사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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