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의 복잡성은 탄소와 수소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유기물질로 구성된 고분자 화합물이라는 데서 온다. 분자구조를 조금만 조작해도 새로운 종류가 만들어지다 보니 그 종류만 해도 천 가지가 넘는다. 형상은 물론이거니와 강도와 유연성, 색감이나 질감, 3차원 입체에서 박막필름까지 뭐든 조절해서 만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백여 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나무나 금속 같은 다른 소재들을 대체해올 수 있었다. 현대문명이 빠른 속도로 플라스틱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이, 사람들은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 바로 용도를 다한 폐플라스틱 처리문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현실문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신소재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 낸 짧은 환상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이제라도 돌아봐야 한다.

플라스틱은 분해가 어려운 복잡한 분자구조들로 이뤄진 재료이다. 미생물에 의한 생분해는 물론이고, 물리화학적으로 분자구조가 해체되는 현상마저도 결코 쉽지 않다. 나무는 열에 의해 셀룰로오스 구조가 분해되면서 가스화한다. 금속은 전자가 빠져나가거나 이동하면서 산화되거나 다른 성질의 화합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에서는 이런 변화가 더디고 어렵다. 심지어는 태우고자 할 때도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고분자가 쉽게 쪼개지지 않아 산소와의 접촉이 어렵다. 이럴 때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기 쉬운데, 일부 플라스틱에 있는 염소 성분과 함께 타거나 저온연소가 있어 탈 때 다이옥신이라는 일급 발암물질을 만들어진다.

현재의 기술로는 재활용이나 연료화가 어려운 폐플라스틱에 대한 처리방안이 딱히 없다. 그저 태우거나 땅에 묻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그럼 땅에 묻힌 플라스틱들이 얼마 만에 흙처럼 분해될까. 일부 비닐봉투에 대해서는 50년을 예측하기도 하지만, 스티로폼 컵이나 두꺼운 플라스틱장난감 같은 것은 500년 혹은 그 너머라 한다. 이것도 데이터를 알 길이 없으니, 그저 막연히 오백년 혹은 그 너머로 가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썩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과연 이런 플라스틱을 우린 계속 써야할까?

지금 사회체계는 생산자 따로 소비자 따로 이다. 물건을 살 때 담아주는 비닐봉투는 거의 1초에 한 장씩 뚝딱 뽑아내진다. 썩는데 50년 걸리는데, 만들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니 쓰레기로 버려졌을 때 제대로 뒷감당 될 턱이 없다. 그러나 생산자는 여전히 생산시설을 가동한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사업체에 재활용 의무를 지우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라는 것이 있지만, 얼마나 현실감 있게 이행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떤가. 소비자는 아무런 부채감 없이 플라스틱을 생활 속으로 유입해 쓰고는 짧은 기간에 버리고 만다. 그저 분리 배출한 것으로 소비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스틱류만 모아서 내놓으면 수거차량이 싣고 가버리니, 그 뒤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도 또 굳이 알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재활용 산업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인식이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다. 쓰레기 재활용에 관한 이러한 사회시스템과 소비자 의식은 지구의 생태계와 환경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소비만 하고 배출하는 주체가 아니라, 생활 속에 끌어들여 소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최대한 오래 사용해야하고, 용도가 다했을 때에는 재활용 되도록 안전하게 다음 단계로 넘겨야 한다. 플라스틱은 자원이라는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비자 개인이나 공동체 단위로 재활용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일도 중요하다. 재활용을 전문가 집단이나 산업체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본다면 오해이다. 그 이유는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의 공정온도가 생활 속에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온도범위 내에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플라스틱 지식을 정리하고, 재활용에 필요한 장비 가운데 이를테면 분쇄기나 압출기를 가정용 규모로 만들어 갖추면 된다. 이러한 장비에 대한 치수 정보나 제작방법은 인터넷에 오픈 소스로 잘 나와 있으니 찾기도 쉽다.

지금까지 알려진 개념에 따르면, 업사이클링(Upcycling)과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 정도가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재활용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재활용(Recycling)은 기술을 좀 더 요하는 소재 차원의 접근을 말한다. 즉 녹여서 새 원료처럼 만들어 처음 제품과 유사한, 혹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다른 유용한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전문가 그룹이어야만 가능한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생활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소재인 것처럼, 이를 재활용하는 방식 또한 얼마든지 일반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재활용 또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염물질을 생산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 대해 답을 제시하는 고급 정보들이 넘쳐난다. 원유로부터 플라스틱 원료를 만들고 이를 제품화 하는 과정에 비해,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소요량이나 오염물질의 발생량은 절반 아래로 줄어든다. 곧 플라스틱 재활용을 하면 할수록 환경 측면이나 자원 측면 모두에서 도움이 된다.

재활용이 여기저기 마구 일어나면 플라스틱 사용량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적극 재활용에 개입하다보면, 플라스틱이 얼마나 고약한 소재인지, 왜 줄여야 하는 소재인지를 알게 된다. 분리하고 세척부터 해야 하는 재활용 절차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면 플라스틱을 줄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스스로 힘껏 앞장서서 재활용하는 것만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근본 처방이다. 지금처럼 누군가가 처리해주거나, 남의 나라에 갖다 팔거나 할 문제가 아닌, 내가 쓴 플라스틱은 나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절실하다. 더 이상 늦추지 말고 적극 개입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