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희동 그림 노계선

 

어둠은 우리에게 바깥에서 오는 감각자극을 줄이고, 안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듣게 한다. 낮의 예민하고 긴장된 감각은 우리를 쉴 새 없이 밖으로 몰아붙이고, 과제와 재미를 따라 에너지를 몽땅 써버려 지치게 한다. 그러는 사이 아프고 탈난 몸도 낮 동안은 어찌할 재간이 없다. 우리는 쉼과 치유, 회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쉬어야 하고 자야 한다. 이것이 겨울의 의미이다.

 

 

24절기 가운데 명절 대접을 받는 것은 동지뿐이다. 절기와 세시는 저마다 양력과 음력을 줄기로 삼아 펼쳐지고 저마다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 날도 달라 늘 엇갈리며 흘러간다. 혹시, 그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일까? 새 생명이 깨어나는 춘분도 있고, 빛이 넘쳐나는 하지도 있고, 열매의 날로 들어서는 추분도 있는데 어찌 동짓날을 그리 맞이하는 것일까?

 

동지. 해가 황도의 가장 밑바닥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날. 모든 것이 두꺼운 고요의 무게에 눌려 죽은 듯이 엎드린다. 이것을 이겨낼 이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우리 내면은 이때 어떤 풍경을 맞이하고 있을까? 해와 같은 처지가 아닐까? 우리가 동지를 맞는 것은 이 긴 어둠이 우리에게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둠은 우리에게 바깥에서 오는 감각자극을 줄이고, 안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듣게 한다. 낮의 예민하고 긴장된 감각은 우리를 쉴 새 없이 밖으로 몰아붙이고, 과제와 재미를 따라 에너지를 몽땅 써버려 지치게 한다. 그러는 사이 아프고 탈난 몸도 낮 동안은 어찌할 재간이 없다. 우리는 쉼과 치유, 회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쉬어야 하고 자야 한다. 이것이 겨울의 의미이다. 동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나의 참된 내면 존재와 만나는 시간이다. 몸의 회복만이 아니라 참된 내면의 나를 다시 만나는 것. 이것이 동지 기간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는 그저 개인의 상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에서도 큰 의미로 여겼다. 그래서 새 문명을 열거나 새 의식을 가져온 인류의 스승들인 태양신 아폴론, 이집트의 호루스, 그리스의 아티스와 디오니소스, 페르시아의 미트라, 인디아의 크리슈나, 유대의 예수이 모두 동지에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참 존재의 회복이자 부활, 그리하여 새 해가 뜨고 새해가 시작된다. 우리가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불러온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새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해처럼 붉은 팥을 쒀서 해처럼 둥근 알을 넣어 먹으며 새 존재로 태어나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 기간을 요란하고 화려하게 보내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성탄절만 해도 문제가 많은 것이, 아무 죄도 없는 하느님의 아들이 자기가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될 판인데, 그렇게 만든 자신의 성도들은 반성하고 미안해하며 조용히 있어야 할 텐데 이리도 소란스런 것이 참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또 선물은 왜 주고받는 건지, 비록 개신교인으로 이날까지 살아왔지만 가장 ‘신비로운’ 날이다.

 

다른 날들은 몰라도 동지는 어둠과 고요의 날이어야 한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다 남들 애먹인 지난 한 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와 직접 이어진 이들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 대한 연대감과 책임감 속에서 서로를 보살피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

 

김희동 님은 대안교육가로 통전교육연구소 소장이다. ‹배움의 숲›을 만들어 성인의 대안교육을 펼쳤고, 대안교육연대를 함께 만들고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노래책‹ 곱기도 해라›, 절기공책 ‹절기살이›, 절기달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