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늪가에 살고 있다.

 내가 늪으로 온 이유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늪이 좋아서다.

좋은 데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도시에 있을 때는 어쩐지 잘못 맞춘 양복을 입고 거리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오랜 세월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색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시간의 물결을 따라 흘러왔다. 사는 게 다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이가 드는 나를 스스로 위로하면서 마흔을 훌쩍 넘겼다. 위로만으로 부족한 그 무엇이 나를 휩쓸고 가는 날이 오면 무작정 카메라를 둘러메고 도시를 벗어났다. 자연의 숨결이 가득한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있으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있었다.

 ‘참, 좋다.’

그 이상의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늪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숲이 보인다.

그리 울창하지 않은 숲이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동네 아저씨처럼 친숙하게 펼쳐진다. 나는 숲으로 들어간다. 신선한 산소가 폐에 가득 들어차면 세상을 따라가던 힘겨운 호흡이 동심의 리듬을 되찾는다.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만남도 이별도 완성되지 못한 채, 단절로 끝난 아픈 도시의 시간들이 숲 향내를 따라 흘러간다.

 버드나무 아래 삼각대를 세운다.

앵글 안으로 들어오는 숲의 표정을 살핀다.

안녕, 가만히 속삭인다. 나무와 풀, 그 안에 품은 많은 생명체를 향해. 내 눈은 어느새 초록으로 물든다. 초록은 곧 마음까지 닿는다. 마술 모자에서 솟아나온 듯, 나무를 차고 오르는 새들의 비상.

 

 팔랑거리는 잎새 사이로 스며든 청명한 하늘의 여백. 도시에서 훼손된 나의 시간들이 기워지고 다려진다. 절대고독의 시간. 쭉 펴진 내 상념의 여로에 투명한 날개를 가진 한 무리가 내려앉는다. 앵글 안에 춤추는 숲의 소리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예술가의 작업은 고독과 싸운 시간의 결과물이다. 도시에서 작업한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지금보다 더 고독했다. 그곳엔 숲이 없었다. 빼곡한 사각빌딩과 번화한 거리는 내 혼을 담을 피사체가 아니었다. 늘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다. 사진은 피사체의 표정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표정이기도 하다. 작가의 삶까지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것이 작품이 아니겠는가. 내가 없는 내 사진. 그런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꺾였다. 끔찍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내 옷을 찾았다. 그 옷을 찾아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과거는 현재 속에 녹아 있는 거라지만 그러기에 나는 더욱더 이 늪가의 숲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이 보는 세계와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특히 사진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곳에 산다’는 건 ‘그곳을 본다’는 의미와도 같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곳을 본다는 것은 내 삶이 죽은 시간을 관통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이래서 그릇대로 살아야 하나 보다. 그 평범한 진리를 이곳에서 숲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내 몸이 숲으로 스미고, 숲이 내 호흡을 마시는, 그런 순환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숲의 표정에 내 입김이 녹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풍경 사진에 혼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의 숲은 내게는 그냥 숲이 아니다. 고독의 시간을 함께해가는 친구이며 동지이다.

 

 그들은 나를 대신해서 세상을 향해 발언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