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감정의
창을 열 때

글 김문영

외국인에게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속정 깊고 따뜻한거 같은데 표정은 딱딱하고 무섭다.’라는 평을 많이 한다지요. 그 만큼 우리가 감정 표현이 서투르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에 방해가 되는 감정 따위는 무시하거나 억누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휘둘리곤 하지 않습니까? 빡빡한 사회생활하면서 감정의 창을 열고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계속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는다는 것 아닐까요? 매사에 일희일비하면 너무나 피곤해지는 것, 혹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불이익을 받기 쉬운 것이 사회생활이자 가정생활이니까요.(중략) 그냥 모든 것을 무감각이나 무감동의 상태로 흘려보내 버린 겁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_ 「강신주의 감정수업」 머리말 중에서

2월 12일자 중앙일보에 “심리학 읽는 남자, 그대 이름은 아저씨”라는 제목의 기사가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여성에게 인기가 많던 심리학책을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새로운 독자층으로 떠오르고 있답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생존경쟁을 견디고 마흔을 넘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끝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해진 사회의 초상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더군요. 자신을 돌아볼 여유든 자기계발의 다른 명목이든 40대 남성들이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방영한 SBS 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강신주 박사는 ‘힐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는 세태를 거침없이 비판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마도 “지금, 당신은 괜찮다.” 정도의 단순한 위로는 어떤 문제의 본질을 극복하는데 오히려 장애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주장일 것입니다.


근대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며 ‘사유하는 인간 존재의 확실성’을 주장한 이후, 감성感性보다 이성理性이 훨씬 우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감정적인 인간보다 이성적인 인간이 근대과학문명에 잘 어울리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죠. “당신은 이성적이군요.”라는 말은 칭찬으로 여겨지지만 “당신은 감정적이시군요.” 하면 왠지 비난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기감정에 점점 인색해져 갔습니다.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남자들은 더욱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감정이 개입되면 일을 망치고 말 것이라는 강박에 묶였던 것이지요. 감정은 남자의 마음을 약하게 하여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뿐이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폭발하는 분노, 원인을 알 수없는 불안감과 강박 행동들, 우울과 좌절, 상대적 박탈감 등.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의 화살촉들이 소나기처럼 영혼에 쏟아져 내리며, 육체에까지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자기감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