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한 라디오 방송사 PD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PD는 소수자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독신주의자도 소수자에 든다며 나를 찾아왔다.
“저는 독신주의자는 아니에요. 조만간 결혼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독신주의라는 말 자체가 또 하나의 소수자를 만들고 있죠. 결혼한 이들은 다수라서 결혼주의자라 하지 않는데, 결혼을 안 하는 이들을 부를 땐 독신주의자라 얘기하잖아요.”
이 말을 시작으로 한 시간 정도 인터뷰에 응했다. 나는 여전히 비혼이다. 그리고 이제는 셀프 인터뷰다.
그동안 비혼을 유지해온 비결이라면?
‘그냥’이란 단어가 모호하지만 정확하다. 큰 결심을 하고 혼자 사는 건 아니다. 흘러왔다. 다행히 ‘어쩌다 보니’는 아니고 ‘살아오면서’ 싱글이 됐다. 아직까지는 싱글이 좋다. ‘질서,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오래된 표어가 있는데, 싱글도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답다.
싱글만 편한가? 남자들은 결혼하면 오히려 더 편하지 않는가?
편하자고, 특히 남자들이 그러는 거, 딱 싫다. 혼자 살아도 살림하는 데 큰 불편 없다. 아침밥 잘 챙겨 먹고 빨래나 청소도 그럭저럭 한다. 결혼해 상대방에게 집안일을 맡긴다면 몸이 편하긴 하겠지만, 가정이 생기면 다른 역할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편리를 위해 결혼을 택할 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못 만나 비혼으로 사는 건 아닌가?
결혼을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상대를 붙잡기 위해 결혼 제도에 기대려 했던 것 같다. 소유하고 싶은데, 현실적인 방법이 결혼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사람을 소유하는 게 옳은 건지, 가능하긴 한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40대 중반인데, 결혼을 안 해 누구보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다.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시다. 더욱이 나는 외아들이다. 30대 후반인 한 지인이,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와 ‘너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괜히 남자들 뒷바라지나 하면서 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라고 했다며 무척 기뻐했다. 그만큼 비혼들은 짐을 갖고 산다. 다행히 누이들은 비혼인 걸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이제는 명절 때 만나도 결혼하라는 얘긴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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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은 홀로 가는 자전거 여행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src=http://www.sisainlive.com/news/photo/201404/20106_39340_1859.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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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비혼’은 홀로 가는 자전거 여행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
그래도 결혼하지 않는 건 불효라고 한마디씩 거들지 않나?
자신이 행복한 것보다 큰 효는 없지 않을까? 설령 비혼이 불효라도 내 삶을 바꿀 수는 없다.
비혼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꾸지 마라. 비혼은 꿈꿔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내게 결혼이 진정 필요한 제도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연인에 대한 합법적 소유권(?), 공간과 물건 공유로 생기는 경제적 이익, 안정된(?) 성적 파트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가질 수 있는 아이, ‘뭔가 모자란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의 탈피 등이 결혼의 장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장점들은 대부분 결혼이 아니라도 얻을 수 있고, 타인의 시선이야 ‘까짓것’ 정도로 무시하면 된다.
이쯤에서 셀프 인터뷰는 끝났다. 15년 전, 인터뷰 당시 PD가 밝힌 프로그램 기획 의도의 핵심은 ‘의식 권력’이었다.
“소수자 문제는 권력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지배적인 의식도 권력이니까요. 예를 들어 독신이나 결혼 제도에 대해 다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소수자를 다수의 의식 권력이 짓누를 수 있잖아요. 우리 사회가 유난히 강자나 다수에 집착하고 동경하면서 약자나 소수를 대한 관용이 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찾고 싶어요.”
글을 쓰면서 비혼을 강조한 것은 다수인 기혼자들이 가진 차별적 의식 권력을 조금이라도 들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식 권력은 비혼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 이주민, 저학력자, 노숙인 등 여타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결혼 영역에서는 아직 진보적 정치권력도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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