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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난파 홍영후는 홍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몇 해가 지나 가족은 서울로 올라와 정동, 지금의 예원학교 자리에 새 둥지를 마련한다. 거문고와 함께 창가를 즐기시던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인근에 있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정동교회 등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개구쟁이 시절 골목에서 뛰놀며 찬송가와 풍금 소리에 익숙했던 형제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나 관심 못지않게 재능 또한 지녔던 형제의 음악 공부는 선친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당시 음악을 한다고 하면 ‘풍각쟁이’나 ‘딴따라’라고 천시하던 풍토를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난파의 큰형 홍석후도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접고 의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부친의 강권에 못 이겨 난파 역시 형의 뒤를 이어 세브란스의전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미 의사로 활동하던 형이 바람막이가 돼 준 덕에,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시작한다. 출세와 미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음악의 길을 택한 것이다.
동경음악학교에 입학한 난파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평소 어린이들이 창가 외에는 부를만한 노래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조선 동요 100곡집’ 등 수많은 동요는 물론, 예술가곡의 효시라 불리는 <봉선화>를 비롯해 서정적인 가곡과 기악곡을 여럿 작곡한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출발한 홍난파를 사람들은 막연히 음악가 혹은 작곡가로 기억한다. 그만큼 친근하고 서민적인 노래들로 익숙하기 때문인데,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노래가 동요 <고향의 봄>이 아닐까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알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흔치 않다. 남북 이산가족 모임이나 해외에서 동포들이 모이는 자리에 으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래 역시 이 곡이다. 마지막 순서에 서로 손을 잡고 합창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은 오랫동안 보아왔으나 볼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홍난파 동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윤석중 선생이다. 1920년대 말, 난파는 어린이들에게 곡을 붙여 줄 노랫말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앳돼 보이는 학생이 종이뭉치를 옆에 끼고 집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처음엔 신문대금을 수금하러 온 청년인 줄 알았는데 그가 바로 당시 양정고보에 다니던 윤석중이었다. 들고 온 것은 신문이 아닌 노래 가사. 이때부터 십여 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둘도 없는 음악 친구가 되어 많은 노래를 만들게 된다.
이즈음 나온 동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퐁당퐁당>을 비롯해 <달맞이(달마중)>,
< 낮에 나온 반달>, <옥수수 하모니카> 등이다. 이 노래 함께 부르던 옛사람은 이미 가고 없는데 노래만은 여전히 남아 우리 귓가를 맴돈다. 이것이 곡조 붙은 시의 위대함이 아니면 무얼까 싶다.

난파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43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는 생전에 할아버지를 뵌 적은 없지만 “내가 죽으면 연미복을 입혀 화장해 달라.”시던 유언에 따라 아버지께서 분골을 한강에 뿌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정동 사거리에서 인왕산 쪽으로 나 있는 성곽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붉은 벽돌에 뾰족지붕을 한 아담한 2층 양옥이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사셨던 집으로, 문화재로 지정돼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다.
유난히 무덥던 여름도 지나고 홍파동 언덕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뜰 앞 그의 흉상에 새긴 “인생은 짧지만 조국과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글귀가 유난히 선명하다. 가만 동요 한 소절 따라 불러야 할 것 같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