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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6년 07월
제목  납작 엎드린 종이, 벌떡 일으켜 세우다 - 재미난 手作 / 이지희, 페이퍼 아트 작가




나는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광고회사를 시작으로 IR 전략, 정책 홍보, 기업 PR 등의 분야에서 15년 남짓 직장 생활을 했다. 인쇄 매체를 다루는 디자이너였기에 종이에 대한 이해는 필수였고, 그런 면에서 페이퍼 아트는 늘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였다. 페이퍼 아트 작가를 꿈꾸게 된 것은 2007년 수출보험공사 애뉴얼 리포트를 만들 때였다. 종이를 소재로 한 입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이미지를 풀어낸 것이 해당 기업의 요구와 잘 맞아 호평을 받았고, 이후 기업 PR 전문 회사로 이직했다가 2010년 독립해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더 어렸을 때부터 페이퍼 아트를 시작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급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간 직장 생활을 하며 쌓은 노하우, 특히 그중에서도 인쇄 가공에 대한 노하우는 시간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지금 주력하는 페이퍼 아트 작업에도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인형 놀이보다 만들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종이 인형을 갖고 놀 때도 옷을 뭘 입힐까 고민하기보다는 와이셔츠 상자에 칸막이를 쳐서 안방과 작은방을 만들면서 놀거나, 뚜껑 있는 상자로 가구를 만들어 노는 걸 더 좋아했다. 좀 더 커서는 오빠의 영향으로 범선 조립, 납땜질, 심지어 고장 난 기계를 분해하며 노는 일까지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동대문 부자재 상가나 청계천 공구상가 거리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어찌 보면 페이퍼 아트를 할 때 여러 소재와 장치들을 결합하기를 즐기는 성향도, 어려서부터 쌓은 그런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그렇게 놀며 자란 덕분인지 뭐든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최근 2~3년간의 작업을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많이 발전하고 노력했다는 게 느껴진다. 그 작업 중 대표적인 것이 ‘퍼피루스(puppyrus)’ 시리즈다. 그동안 페이퍼 아트로 다양한 사물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이 시리즈부터는 작품에 좀 더 개인적인 감정을 실어 생명이 있는 강아지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항상 강아지를 키웠다. 어른이 된 후 직장 생활에 바빴던 나는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혹은 그다음 날 새벽에나 겨우 귀가할 수 있었다. 강아지는 퇴근한 나를 보면 무척 반가워했지만 피곤함에 겨운 나는 귀찮아하며 강아지를 외면하곤 했다.

하지만 10년 전쯤 떠나보낸 요크셔테리어 수지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고 갔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수지는 이미 생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그제야 덜컥 놀란 마음에 수지를 꼭 끌어안았다. 촉촉했던 코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말라 있었다. 정신이 희미해져 온몸을 늘어뜨린 수지를 안고 “언니 한 번만 봐줘…”하고 애원했다. 수지는 마지막 힘을 짜내 날 바라봐주고는 눈을 감았다.

그 뒤로 나는 한결같은 나의 강아지들을 페이퍼 아트로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나 늦게 깨달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자, 늘 묵묵하고 사려 깊은 위로를 담아 내게 다가와 준 그들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내 삶의 빛나는 조연이었던 그들의 체온을 페이퍼 아트로 부활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페이퍼 아트를 새로운 매체와 융합한 작업을 하고 있다. 2분짜리 페이퍼 플레이 스톱모션(paperplay-stopmotion)을 완성하기 위해 약 5천 컷의 촬영을 진행했다. 이 영상 안에서는 평면에 지나지 않았던 종이들이 살아 움직인다.

이렇듯 페이퍼 아트에는 한계가 없다. 어느 곳이든, 어떤 콘셉트이든 구현만 한다면 멋진 오브제가 된다. 나는 페이퍼 아트로 재현 가능한 세계의 다채로운 모습을 홈페이지(jihee-paperwork.com)에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종이에 고유의 색과 공간과 질감을 담는 것을 넘어, 어떤 정서를 담는 작업은 나에게 한없는 동기를 유발해준다. 페이퍼 아트로는 지금껏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완성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페이퍼 아트의 무한한 상상력을 생각하다 보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내일 아침이 늘 기다려진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6-07)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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