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일 죽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참 ‘열심히도’ 살았다는 것이다.

 누군들 열심히 살지 않겠느냐마는 참 많이 일했다.

회사를 시작한 지 20년. 그 중 10년 넘게 한 달 평균 100시간의 강의를 했고, 강의 준비와 이동시간을 합하면 한 달에 500시간을 넘게 일했다. 한 달이 720시간이니 눈 떠있는 시간은 거의 일에 매달려 있었던 셈이다. 일하기 위해 먹고, 일에 방해되지 않으려 자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일과 연결되는 나날이었다. 병원에서 일 중독증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속도를 늦출 줄은 몰랐다.
 사람들의 이미지가 관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20년 전에는 흔히 듣는 말이 ‘이미지는 무슨, 실력이 중요하지’였다.

 돈 잘 벌면 되고 잘 놀면 됐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사무실은 10년 차에 300평 규모로 확장되고, 직원은 30배가 되었다. 2004년 <따뜻한 카리스마>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부르는 자리도 많아지고, 그 간 대선 후보를 비롯해 500여 명의 유명 인사와 CEO들의 이미지 컨설팅을 해 온 시간. 돈을 받으며 일하긴 했어도 그들에게 배운 것 또한 참 많았다.
 교만하게 느껴지는 재벌 2세는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정·재계 사람들의 자리에 함께하며 침묵이 겸손인 것으로 교육받아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의 일면만으로 쉽게 누군가를 판단할 일이 아님을 일하며 배웠다.

 유머에 능숙한 어느 오너는 “왜 그렇게 유머를 많이 하세요?” 하니 “내 자리 때문에 함께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든 운동을 하든 나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래요”라 한다. 예순을 넘긴 그가 전해준 겸허한 마음을 닮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미지를 코칭하고, 그들에게 세상살이를 배우며 여기까지 왔다.
 몇 해 전, 5년 조금 넘게 타고 팔았던 차는 40만 킬로미터를 뛰었다.

한 달에 부산을 스무 번 오가고,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을 때면 짐 보따리를 뒷자리에 싣고는 바로 달리던 울산행, 광주행의 나날들. 강의시간에 행여 늦을까 과속도 하고, 한겨울 눈길, 울어버리고 싶도록 퍼붓는 빗길, 안동에서 영덕을 넘어가는 험난한 산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개길….
 과속으로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는 30분이라도 자기 위해 차 안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런 20년의 바쁜 나날 동안 내 차는 네 번 바뀌었다.

 그 차들 모두 단 한 번도 나를 산속에 고립시키지 않았고, 강의에 늦지 않게 나를 인도해 주었다.
 나는 지금 쉰 살을 앞두고 몇 해 전부터 노안에 시달린다.

너무 작은 노트북으로 책을 완성하다 급격히 나빠져 이제는 내비게이션의 숫자 단위가 안 보여 고생이다. 그간, 나는 노트북을 세 번 바꿨다.

 온갖 강의안들을 다 담아주었고, 세 권의 베스트셀러 책이 나올 동안 단 한 번도 사고를 치지 않았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나를 이끌어 그들 앞에 앉게 해주고, 내 머릿속 내용을 활자로 내놓았다.

 심신이 고달픈 나에게 음악으로 위로를 주고, 어느 새벽에는 ‘할 수 있다’고 나를 격려했다. 그들의 도움 없이 오늘의 내가 있을까. 빠짐없이 나의 졸필들을 저장해 주고, 커서를 깜박이며 나를 재촉해 주었다. 나는 나의 노트북들이 참으로 고맙다.
 내게 재능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돌이 지나도록 사방에 병풍을 치고 나를 키워내신 엄마에게서 온 것이다.

 ‘자식 가진 사람은 달라야 하는데…’ 하며 신문의 사회면을 읽으시던 엄마의 혼잣말은 세월이 아무리 가도 내 귓전을 맴돈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고, 이성적이면서도 더없이 감성적인 소녀 같은 내 엄마.

 나 일하던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셨을까. 그 기도는 또 얼마나 간절했을까. 숨소리조차 죽이며 하던 엄마의 기도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자동차와 노트북, 엄마 덕분에 나는 부끄럼 없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