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이상한 섬이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덧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려 있다. 무장해제된 마음으로 제주 곳곳을 누빌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 쏟아진다. 그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게스트하우스다. 현재 제주에는 300~400개의 게스트하우스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전통 가옥에서 하룻밤 온전히 쉴 수도 있고 책이 그득한 책장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된다. 소소한 감성을 담은 사진 전시나 절로 흥이 나는 공연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게스트하우스의 묘미는 바로 ‘사람들’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진정 속 깊은 제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특히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은 제주의 거뭇한 돌담을 닮았다. 제주의 돌담은 돌과 돌 사이 빈틈이 많지만 세찬 바람에도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다. 빈 공간으로 바람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도 그러하다. 바람 한 점 오고갈 여유를 품고 살기에 삶이 더욱 견고하다. 그들이 만든 공간, 그들이 이뤄낸 문화를 따라 여행하니 그들만큼이나 넉넉한 여행자가 되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인 ‘올레’가 예쁜 게스트하우스. 낮은 돌담을 따라 걸어가면 그 끝에서 ‘제주스러운’ 풍경이 와락 안겨온다. 제주 전통 가옥 구조인 ‘ㄷ’자 구조로 돌담집 세 채가 정겹게 기대어 있다. 제주에서도 이처럼 안거리, 밖거리, 창고 혹은 우사로 이뤄진 삼거리형 주택은 보기 힘들다. 안거리는 커플이나 친구가 함께 쓰기 좋은 2인실이, 밖거리는 가족형 독채인 4인실이 자리한다. 실내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깔끔하고 포근한 분위기다. 이 집의 백미는 주인장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자 근사한 풍경을 자랑하는 카페. 한동리 쪽빛 바다가 창밖으로 그림같이 펼쳐지고 한편에 놓여 있는 난로에선 온기가 피어오른다. 카페를 나서면 바닷바람이 콧속으로 스멀스멀 들어온다. 여름이면 평상에 누워서 한량놀이를 즐기고 겨울엔 초록빛 파밭 앞 의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이곳은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처럼 함PD가 운영하는 집이다. 서울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온 주인장 함PD는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보다는 여유로운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제주에 정착한 지 2년 반. 딸 선율이는 잔디가 있는 마당을 맨발로 뛰어다니고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언제든 집 앞 바닷가로 아장아장 나선다. 수줍은 한동리 앞바다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그는 제주와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최근에는 <그림 그리는 해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천천히 꿈을 이루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잊고 있던 내 꿈을 다시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머무르면 짧은 일정의 여행도 느리게, 느리게 흘러간다. 주인장 역시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처럼 매일 느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고쟁이로 바쁘게 지내온 그녀는 언제까지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제주에서의 행복했던 여행을 떠올리다 단숨에 이곳까지 내려오게 된 것. 정착한 지 2년 남짓이지만 이제 그녀는 40분 거리의 시내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단다. 백화점이나 대형 서점을 다니던 자신이 이렇게 한적한 시골에 반해 한량처럼 지내고 있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 그녀는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보낸다. 곧 주인장이 쓴 제주 에세이 책이 나온다. 그녀의 책이 제주의 삶을 꿈꾸는 여행자들을 더욱 설레게 할지도 모르겠다. 슬로우트립은 혼자 놀기 좋은 공간이다. ‘모던&오덕’이란 콘셉트로 알록달록한 플레이모빌이 게스트 공간에 재미를 더한다. 여자 게스트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부엌도 예쁘지만 좁은 사다리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비밀 공간, 다락방이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며 할 일 없이 놀다 출출해지면 이름도 독특한 ‘스팸메일보내지마요덮밥’을 먹어보자. 붉은빛이 매력적인 ‘성산 일출봉 에이드’, 하루 다섯 잔만 파는 ‘수제복숭아라씨’ 등의 음료도 카페에 마련되어 있다

 

 

 

 

 

    매일 아침 오름 투어로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게스트하우스. 써니와 허니로 불리는 두 형제가 오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한 이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열심히 오름을 올랐다. 고 김영갑 작가가 사랑한 용눈이오름부터 아부오름, 백약이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 10여 개를 게스트와 함께 오른다. 숲길을 걸어야 하는 체오름과 당오름, 거슨새미오름은 촉촉할 때 더 운치가 있어 비 올 때 꼭 찾는 오름이다. 아침 일찍 오름을 오른 뒤 시작하는 제주 여행은 더욱 상쾌하게 다가온다.이곳 게스트하우스는 두 공간으로 나뉜다. 객실 ‘스르륵’과 휴식 공간인 ‘밍기적’. ‘밍기적’은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싫은 곳이다. 누군가는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만화책을 읽다 달콤한 낮잠에 빠지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인장이 모으고 게스트들이 남긴 6000권이 넘는 책이 책장에 빼곡하고, 맛있는 차와 주전부리가 그득하다. 조금 더 이곳에 파묻히고 싶다면 몸뻬바지를 빌려 입고 뒹굴거릴 것을 추천한다.‘밍기적’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공연이 열린다. 잠베,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공연팀은 그 자체로 활력이 넘친다. 공연팀의 멤버인 제주거지훈과 홍군은 게스트하우스 공사 때부터 함께했던 자유여행자다. 그중 막내인 제주거지훈은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5> 출연, <전국노래자랑> 입상, 제주 백난아 가요제 본선 진출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재주꾼이다. 제주거지훈과 홍군이 제주 시내 근처에 ‘밍기적’의 콘셉트를 그대로 살린 카페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개봉박두!

 

 

 

 

 

     언젠가 홀로 제주현대미술관을 찾았을 때, 바로 옆에 있던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궁금했다. 고요하고 한적한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Page U를 만난 후 그 궁금증이 풀렸다. Page U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안에 위치한 유일한 숙소. 이곳을 찾았을 때 주인장은 정원에서 직접 가꾼 긴잎꿩의다리 꽃과 풀을 우려 향긋한 차를 만들고 난로에서 군고구마를 꺼내서 우리에게 건넸다.함께 마을 탐방에 나선 길에서 그는 지우는 화법으로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은 그은 박서보 작가와 유럽, 러시아 등에서 인정받는 김흥수 화가 등의 집을 돌며 그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고 제주현대미술관까지 관람을 마치니 1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작가다. 그가 쓴 한 줄의 짧은 시에는 항상 제주가 담겨 있을 만큼 제주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다. 그는 게스트 한 명 한 명을 한 권의 책으로 여긴다. 하루 저녁 함께 머무르며 게스트란 한 권의 책에서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곤 한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의 이름도 ‘당신의 페이지’란 뜻의 Page U다.이곳에선 예술인 마을 산책과 갤러리 투어 외에도 원한다면 오름 투어도 할 수 있다. 드넓은 초지에 방목하는 대규모 소 떼의 행렬을 볼 수 있는 당오름, 가뿐하게 올라갈 수 있는 망오름, 눈부신 억새풀을 볼 수 있는 정물오름 등을 함께 오를 수 있다. 겨울이라 조금은 황량하지만 Page U의 정원도 놓치지 말자. 자주쓴풀, 무릇, 바위솔, 여우구술, 옹굿나물,제주상추꽃 등 이름도 생소한 풀들이 자라고 있다.

 

 

 

 

 5. 궁금한 프로젝트, 수상한 소금밭 

 

     이곳에 들어섰을 때 마침 재주소년의 ‘섬’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단절된, 비밀스러운 공간에 들어온 느낌.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벽에 붙어 있는 여행 사진들에서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이곳의 주인장은 헤드헌터이던 아내와 카피라이터이던 남편.일에 치이고 경조사를 쫓아다니며 지내는 삶은 단조롭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날 제주 여행을 했고, 조금은 생뚱맞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게스트하우스가 자리한 터엔 갈대가 우거져 있지만 원래는 소금밭이었다. 되도록 동네 분위기와 맞추려고 단조로운 색과 창고 같은 건물로 지어 올렸다. 이 안에는 더없이 포근한 감성이 흐른다. 매월 전시를 여는 문화 공간을 마련한 것. 2013년 12월엔 배성아 작가의 <1인극 여행>전시가 열렸다. 작가가 수상한 소금밭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쏙 들어 주인장이 전시를 제안했다. 1월엔 양보은 작가의 캘리그래피 전시를 연다. 감성이 듬뿍 담긴 서체가 이곳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릴 듯. 그동안의 프로젝트 중 반응이 가장 좋았던 것은 수상한 디너쇼다. 심야식당처럼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주는 식당 ‘응?’의 셰프들과 함께한 프로젝트였다. 곧 게스트하우스 옆에는 주인장을 꼭 닮은 책방 하나가 생길 예정이다. 그 안에는 길 위에서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이 차곡차곡 채워질 것이다.

 

 

 

 

     넙빌레를 만나는 순간, 건물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창에 반해버렸다. 낮에는 햇볕이 머물고 밤에는 달빛으로 물들 것 같은 게스트하우스를 나만의 비밀 장소로 만들고 싶을 정도. 넓은 정원엔 야자나무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게스트하우스 바로 뒤에 있는 감귤 농장은 싱그러움을 더한다. 몇 걸음 나서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동네 노천탕이 있고 그 앞에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이곳은 서울에서 15년 동안 쉼 없이 일해온 부부가 내려와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다. 아내인 윤아 엄마는 이 마을에서나고 자랐다. 20여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게스트하우스를 꾸려나가고 있다. 아버지가 어릴 때 묘목으로 심은 야자수가 이제야 게스트하우스 옆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위미리는 제주에서도 감귤로 유명한 곳. 제주에서 귤을 가장 처음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짠바람이 귤을 더 달콤하게 만들어준다고. 감귤은 11월부터 12월까지 수확하는데 이 시기에는 직접 귤을 따서 가져갈 수 있다. 감귤 체험을 못하더라도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이 귤로 주인장이 정성스레 만든 잼을 언제든 조식에서 맛볼 수 있다.게스트하우스 이름인 넙빌레는 너럭바위라는 뜻의 바닷가 샘터를 말한다. 게스트하우스 앞 바닷가 암반에서 용천수가 퐁퐁 솟아오르는데 여름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훌러덩 옷을 벗고 탕에 몸을 담근다.이곳에서 만난 용눈이1호, 다랑쉬1호라 불리는 스태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며 여행하는 커플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그 둘이 잘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일. 아직 대학생 신분이라 언젠간 학교로 돌아가 학업에 열중하고 취업도 해야 하지만 그 둘의 꿈은 제주에 정착하는 것이다. 스태프뿐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는 주인장인 대장님과 윤아 엄마의 배려는 이곳의 멋진 시설보다 더 빛난다. 마침 이곳을 찾은 날은 게스트 10여 명이 모여 다음 날 아침 한라산 등반을 준비하고 있던 중. 조용한 성격의 대장님은 모임에 술이 떨어질세라 두 손 가득 술을 날라왔고 다음 날 등반에 동행할 게스트를 위한 간식까지 손수 챙겼다. 주인장의 따뜻한 대접에 다시 찾고 싶어지는 게스트하우스다.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재미있는 일이라면 두팔 걷고 나서는 만화가 메가쇼킹(고필헌)을 중심으로 쫄깃패밀리들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여기선 뭘 해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이것이 바로 쫄깃센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 쫄깃은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적당히 탄력 있고 재미있는 상태로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 이곳에서만큼은 마음이 좀 풀어져도 괜찮다. 3년 전, 옥빛 협재바다와 비양도가 보이는 이 건물이 마음에 쏙 들어 메가쇼킹이 트위터를 통해 쫄깃패밀리를 모집했고, 그들이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했다. 하나하나 직접 지은 게스트하우스에 마지막 화룡점정은 물빛 색의 고래. 마치 협재바다로 헤엄쳐 갈 것 같은 고래는 쫄깃센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쫄깃센터는 게스트들이 한데 어울리기 좋은 공간이다. 저녁이 되면 바다가 보이는 큰 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바로 앞 바닷가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기도 한다. 또 오픈식 냉장고와 수납장도 운영하고 있어 게스트들이 직접 냉장고를 채우고 비우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다. 이곳에선 특히 아침을 꼭 챙겨 먹자. 이름부터 수상한 ‘메뚜기 수프’는 메가쇼킹이 직접 끓인 X뚜기 인스턴트 수프로 건더기가 듬뿍 들어 있어 든든하다. 큼직하게 썬 제주산 감자와 양파, 마카로니에 청양고추를 넣어 걸쭉하게 끓인 수프는 전날 과음한 게스트들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메뉴다. 졸깃센터는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지하에 500여 장이 넘는 DVD가 구비된 작은 영화관이 있고, 거실에는 출판사와 게스트들이 보내주는 따끈따끈한 책이 넘쳐난다. 쫄깃한 일상을 위한 쉼, 재미있는 내일을 함께 꿈꿀 수 있는 공간이다.

 

 

 

 

 

    소소한 제주를 들여다보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숙소. 제주의 모든 관광지를 섭렵한 여행자라면 이곳을 추천한다. 캐도캐도 마르지 않는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놀랄 것이다. 걸어 다니는 제주 사전이라 불리는 매니저와 함께 떠나는 일몰투어는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행자의 필수 코스. 손바닥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마을은 일몰투어가 아니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신창리에 있는 미장원 소개도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마을의 역사나 사람들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로 여행자를 즐겁게 한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싱개물공원을 지나 수월봉에 이르면 뉘엿뉘엿 해가 저문다.물고기 모양의 차귀도와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의 와도를 배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짧은 여행 일정이 더욱 아쉬워진다. 1시간 30분 정도의 일몰투어가 끝나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비큐 파티가 시작된다. 1인당 1만원만 내면 제주흑돼지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고, 낯선 게스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어울리기 좋다. 오래된 게스트하우스라 최신식 시설은 기대 할수 없지만 일몰투어는 뚜벅이 여행자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 듯. 제주의 일몰이 얼마나 황홀한지 이곳을 통해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