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KK)는 아랍어로 ‘바람 아래의 땅’이란 뜻으 로, 북보르네오 섬의 ‘사바Sabah’ 주에 자리한 주도이다. 보르네오 섬은 브루나이, 말레이 시아, 인도네시아 세 나라로 나뉘어 있다. 동남아시아 최고봉인 키나발루 산(4,095미터) 을 품고 있는 코타 키나발루는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석양으 로 손꼽혀, 흔히 ‘말레이시아의 보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케이케이KK. 현지사람 들이 코타키나발루의 앞글자만 따서 부르는 귀여운 애칭이다. 공항 입국장에서 마주한 여 성들의 패션은 아랍의 까만 히잡이 아니라 디자인이 세련된 히잡을 쓰고 캐리어를 끄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걸음새가 눈길을 끈다. 이슬람 문화권이면서도 종교가 비교적 자유로 운 편이기 때문에 실제 히잡을 쓴 여성보다 트렌디한 패션으로 치장한 여성들의 모습이 현재의 코타 키나발루를 말해준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마리 마리 민속 마을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40분.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면 이나남Inanam의 숲속에 마리 마 리 민속 마을Mari Mari Cultural Village이 있다. 바람에 부딪히는 이파리와 풀벌레 소리 만이 고요한 정적과 놀아주는 곳. 이 민속마을은 사바주 32개 부족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5개 소수민족의 전통 가옥을 복원한 우리의 민속촌과 같은 곳이다. 집 안팎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생활도구를 재현해 놓고, 먹고 마시는 모습까지 자연스레 보여줘서 마치 원주민 들이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공간. 마을 입구를 지나 개울 위에 놓 인 다리를 건너자 밑동이 굵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나무를 잘라 벽과 천장을 올린 가 옥들이 키 큰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이어졌다. 이제부턴 가가 호호 방문이다. 집을 안내해 줄 가이드의 뒤꽁무니를 쫓아 보폭을 아주 크게 하고 따라 나섰다. 이 큼지 막한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서 먼 과거의 시간으로, 또 저 깊은 내륙 안으로 순간 이동하는 착각이라도 하려는 듯이
일상과 일탈이 공존하는 곳, 워터프론트
여행자가 리조트와 바다에서 벗어나 케이케이를 찾아가는 목적은 늘 동일 하다. 해안가에 조성된 워터프론트Waterfront에서 값싸고 풍성한 해산물 요리를 즐기고, 세계 3대 석양에 빛나는 케이케이KK의 황홀한 저녁 빛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로 케이케이 시내가 마음에 쏙 드는 건 이 두 가지 항목이 여행자들만의 전유물이 절대 아니라서다. 어선이 가득한 항구 에서 해산물 요리가 식당의 주메뉴인 것은 당연한 이치고, 하늘 전체를 물 들이는 석양이야 그 하늘아래 선 모두의 것이니 현지인들이 워터프론트를 찾아오는 이유도 변함없이 똑같다. 해질녘 해안가로 모여든 현지인들 틈에 섞여서, 항구에 어지럽게 붙어있는 어선 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누리고 있는 작고 평범한 일상이 타국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일탈이 되는 순 간이 감격스러워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항구가 연기가 휩싸이면서 영화 같 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노를 젓고 물살을 가른다, 파파르 강 래프팅
키나발루산의 깊은 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강을 이루어 흘러가면서 곳 곳에 절경을 만들어 놓았다. 그 절경 속에서 래프팅을 하며 즐기는 색다른 경험들은 코타키나발루의 추억을 더욱 오래 간직하게 만들곤 한다. 파파르 Papar 강에서 즐기는 약 2시간 동안의 래프팅을 위해 노를 젓는 방법과 헬 멧 착용 방법, 물살을 타고 넘어가는 법, 그리고 물에 빠졌을 때 보트 위로 올라오는 법 등 다양한 기술을 미리 습득하고 보트에 오르게 된다. 안전을 위해 전문가가 동승 하지만 여정의 중반에 들어서면 물속에 빠뜨려 즐거 운 추억을 만들어 주곤 한다. 초보자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래프팅 장소 가 있는가 하면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고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다소 난이 도가 있는 코스의 래프팅 장소도 키나발루산의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물 소리와 바람소리, 노를 젓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즐거움에 지르는 비명 소리까지 파파르 계곡에 울려 퍼지는 함성이 래프팅의 추억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 준다.
섬으로 떠난 하루, 툰쿠 압둘 라만 해양공원
코타 키나발루의 옛 이름이 바로 제셀톤Jesselton이었다. 제셀톤 선착장에서 툰쿠 압 둘 라만 해양공원Tunku Abdul Raman Marine Park으로 가는 보트를 타고 30여 분 달려 제티(Jetty : 둑, 부두)에 도착했다. 초록빛이 감도는 옥빛 바다를 질주하는 보트 는 수상가옥 마을에서 잠시 멈추더니 다시 엔진 소리를 높이며 물살을 가르고 시원한 바람을 선사한다. 인근 섬을 찾아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해변의 모래 쌓기 등 액 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열대 휴양지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쯤 편히 쉬고 싶은 생각이라면 리조트에 남아 유유자적해도 좋지만, 이렇게 아일랜드 호 핑을 떠나 섬에서 하루를 즐기는 기회를 적극 추천하곤 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아일 랜드 호핑으로 가장 선호되는 곳이 바로 툰구 압둘 라만 해양국립공원이다. 바로 앞 에 보이는 바다에 5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의 한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해양 국립공원의 섬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섬은 가야섬, 사피섬, 마누칸섬으로 특히 마누칸섬은 수트라하버 리조트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기에 섬에는 묵을 수 있는 빌라와 레저스포츠 장비, 레스토랑 등이 갖추어져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속에는 형 형색색의 산호들이 자라고 이름 모를 열대어들이 사람들 곁에서 떠날 줄 모르는 신비 로운 바다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낙원이 따로 없다.
선셋 리버 크루즈와 반딧불이 투어
교통체증이 심한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들어서니 울창한 열대림 사이로 강 이 나타났다. 늦은 시간임에도 주변은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작은 유람선을 타 고 강을 벗어나 해변 모래사장에 내려놓는다. 또 한 번 감탄하는 장엄한 선셋 광경은 역시 코타 키나발루는 가는 해변마다 선셋으로 바다 위를 황홀하게 물들인다. 강물 주위가 더 어두워지자 반딧불이가 맹그로브 수풀 사이를 유영하며 하나 둘 빛을 발했 다. 반딧불이는 작지만 이곳저곳에서 무리로 반짝인다. 이 나무 저 나무에 매달려 반 짝반짝 옅은 빛을 냈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광경으로 사람들이 연신 감탄하는 동안 가이드는 계속해서 반딧불이를 불러 모았다. 반딧불이는 청정지역에서만 사는 생물 이기 때문에 그만큼 코타 키나발루가 깨끗한 환경 지역임을 말해 준다. 코타 키나발 루의 반딧불이 투어를 놓치지 말기를.
젊은이들의 공간, 탄중아루 선셋과 쇼핑몰
코타키나발루의 서쪽에 자리한 탄중아루Tanjung Aru는 해변을 따라 잘 가꾸어진 공원이 자리 하고 있다. 탄중아루하면 선셋으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의 석양’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다. 서쪽 바다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젊은 연인들이나 우아하게 비춰지는 거리와 레스토랑의 조명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곳은 럭셔리 리조트가 있는가하면 해외 공관의 사저, 그리고 고급 빌라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고 급스런 이미지를 풍기는데, 저녁이면 특히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쇼핑상가들 그리고 넓은 백사장 뒤로 지는 석양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며 추 억을 남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코타키나발루 젊은이들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다. 젊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탄중아루를 빼놓을 수 없듯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쇼핑천국의 공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공간이 된다. 현대식 건물로 가장 많은 쇼핑객들이 몰려 드는 이마고Imago 쇼핑몰은 유명브랜드의 의류, 전자, 잡화, 패션 등 다양한 브랜드 등 저렴하 면서도 질 좋은 상품들이 젊은 고객들의 시선을 유혹하곤 한다.
오늘의 코타키나발루
2024년 오늘의 코타키나발루가 조금은 낯설 테다. 콘크리트로 된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자동 차가 빽빽하게 줄지어선 심각한 교통체증까지 겪는다면 더욱. 시내 중심가와 바로 붙어 있는 해 안은 어선과 화물선이 즐비한 남중국해를 끼고 있는 국제적인 항구도시 코타키나발루의 위풍 당당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동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코타 키나발루는 사바주의 주도 로서 정치, 경제,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때 무수히 많았던 수상마을은 거의 사라지 고, 시청, 국립모스크, 박물관, 아파트, 레스토랑, 마리나, 숍이 즐비하게 들어서며 무역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시내 중심부는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인데도 거기에 현대 적인 대형쇼핑몰만 여럿인 걸 보면 급변중인 코타키나발루의 발전이 짐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