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뜨고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 비추는 강물은 흐르고 맑다. 강가 절벽 홍매화와 백매화가 피어있다. 바람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대나무 숲을 따라서 자기를 살짝 보여준다. 대나무 사이로 동구리들이 숨어 있다. 동구리를 따라서 우리의 눈은 다채로운 컬러의 밝고 선명한 하나의 우주를 여행한다. 권기수 작가는 동구리에 아무런 뜻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하지만, 관객으로서 우리는 세상살이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동구리에 투사한다. 

동구리는 얼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몸과 다리는 왜소하고 가냘프다. 사유와 공상으로 내면이 가득 찬 존재다. 몸과 팔, 다리가 작은 인간이다. 얼굴과 머리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눈은 검은 동공으로 뚫려있고 코와 입이 그려져 있는데, 빙그레 웃고 있다. 정말 동구리가 웃고 있는 것일까? 표정은 변함없다. 상황과 배경, 장소와 분위기는 다양하고 다채롭게 변화무쌍하지만 동구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전통 산수화 속 인물은 구체적인 현실 속 인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은인자중(隱忍自重)하거나 도원경 속 신선들처럼. 자연(산수)와 일체가 된 인간이 화면 속에서 유일한 조형적 장치이자 주재자(主宰者)로 작용한다. 탈속의 경지이다. 동구리도 불특정한 운동과 형상을 지칭하는 지표일 뿐이다. 만화나 팝아트의 평범한 캐릭터와는 다르다. 비약하자면 동구리는 순환 구조를 은유하며 둥근 형태를 닮은 생(生)의 형상, 카르마를 떠올리며 생사(生死)의 순환성을 은유한다.

동구리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의 다양한 지평과 차원이 교차하고 약동한다. 이미지 하나하나가 직접적인 발언도 서슴없이 드러낸다. 랩을 하듯. 우리는 동구리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동구리에서 출발하거나 동구리를 지나쳐 어딘가를 향해 자유롭게 이동한다. 권기수의 회화와 드로잉은 전통 산수와 현대미술의 정신성을 충돌시키고 형식적 실험을 통한 새로운 유형의 창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90년 중반 이후 2002년 처음 동구리 시리즈를 제작하기 전까지는 리얼한 사람들의 전신상을 수묵으로 제작하고 그 형상대로 마치 오브제처럼 여백을 모두 따낸 이미지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이후 동구리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현재의 표현 형식을 처음 제시했다. 2002년 7월 삼청동 월전미술관에서 운영했던 백월빌딩 1층과 인사동의 갤러리 피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두 갤러리의 건축적 환경과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깔끔하게 디자인된 동구리 형태로 변형한 이미지로 전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폭발적으로 소개되었다.

권기수의 회화와 동구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은 아직 얇고 좁다. 단순히 팝아트의 스타일을 한국화에 차용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권기수 작가의 회화가 한국 현대 한국화의 독자적인 새로운 출구를 개척하고 미학적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동구리가 더 많은 해석을 위한 미지의 대지처럼 넓고 공기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권기수 작가의 세계는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글·김노암(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2002년 동구리 시리즈 발표. 2008년, 2010년 구글 아트프로젝트의 한국 초대작가로 뉴욕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풀브라이트 후원으로 미국에 초빙 교수로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펼침.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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