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는

이강유, 화가

내 20대의 작업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소재로 나만의 생각을 직관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추상적인 이미지로 구현되었다. 모호했기에 구현될 수 있었던 그때의 작업은 아마도 내 평생의 작업에 상징적인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30대가 되니, 나는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생겨났고, 그만큼 소통도 필요해졌다. 아무것도 몰랐던 20대에는 지금보다 일방적인 소통을 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직관적인 생각이 조금은 어른스러워짐으로써 자연스레 인간의 이미지를 동물로 치환했고, 은유적 표현도 시도해 보았다.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동물의 모습을 그려나가며 이곳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길 바란 것이다.

그러다 문득 ‘대백로(大白鷺)’라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살면서 비록 많은 종류의 새를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평소 흔하다고 여겼던 백로의 깃털은 마치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듯 아름다운 형상이었다. 이 아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된 대자연 속에서 수호천사 역할을 할 것 같은 생명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새의 이름을 ‘웨딩새’라고 지어주었다.

결혼이란 두 성인 남녀가 정식으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는 계약이라는 뜻이다. 물론 인위적인 단어이지만, 본래의 의미는 결국 어느 두 생명체가 만난다는 것에 있다. 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 속에서는 여러 생명이 계속해서 만나고 있는데,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번성을 의미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하얀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곤 했는데, 그 후 나에게 있어서 하얀 새는 점점 길조(吉鳥)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백로’의 깃털을 보았을 때, 문득 하얗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를 상상하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양면적인 얼굴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하얗고 화려한 신부를 상상할 때면 아름답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가. ‘웨딩새’는 이토록 좋은 세상을 지키며 만물을 번성시키는 대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나에게는 이상향적인 상징물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뒤엉켜 있는 세상에서 사랑을 지향하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그 무엇이 두려울까. 세상의 모든 웨딩새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웨딩 십장생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장생도(長生圖)란 조선시대에 장생을 기원하며 오랫동안 살아가는 생명체를 그려 넣은 민화풍의 관념 산수화이다. 나는 이 장생도의 형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웨딩 십장생도>라는 시리즈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전술한 ‘웨딩새’가 등장하는데, 장생도 내의 자연물과 서로 좋게 만나서 모든 만물이 번성해 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대자연도 장생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담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고, 그들은 서로 의지한다. 어찌 보면 삶은 우연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와, 세상에 이런 우연이!’라고 느끼게 될 정도의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믿기 힘든 사실을 굳게 신뢰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이 필연이든 우연이든 간에.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레이더망으로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필두로 나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레이더망은 필연적이지만 자연의 레이더망은 아마도 우연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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